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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위한 기록

철학자와 늑대(늑대에게서 인생을 배우다) - 마크 롤랜즈

브레닌과 나는 11년간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녔다. 이사와 전직을 거듭하며 국경과 대륙까지 넘나들었고, 수많은 이들과 만나고 또 대부분 헤어졌지만 브레닌만은 항상 함께였따. 집에 있을 때도, 일을 할 때도, 그리고 놀 때도,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브레닌이었다. 동틀 무렵 녀석이 그 큰 혀로 내 얼굴을 핥아 깨우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늑대도 개도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과 달리 늑대는 감정을 좇지 않는다. 그들은 토끼를 쫓는다.

때로는 삶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이 가장 가치있기도 하다. 가장 불편하다는 이유로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이 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브레닌은 내 소유물이 아니었다. 애완동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녀석은 내 형제였다. 어떤 면에서는 동생 같았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녀석이 이해하지 못하고 또 녀석을 믿지 않는 세상에서 보호해 주는 보호자였다. 우리가 무엇을 할지 결정하고, 브레닌이 동의하건 아니건 실행하는 것도 내 책임이었다.

인류는 계약으로 인해 문명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약은 끊임없이 사기를 쳐야 하는 압박도 제공한다. 인류는 계약 때문에 문명인이 되었지만, 동시에 사기꾼도 되었다.

사람들은 내게 종종 브레닌이 행복하냐고 물었다. 사실은 이 잔인하고 무책임한 인간아 어떻게 야생 늑대를 데려와 억지로 인위적인 삶을 살게 하고 인간의 문화와 관습을 강요할 수 있냐?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리라.

브레닌이 사냥을 할 때 행복했다면, 녀석에게 행복이 무엇이었을까? 사냥에는 긴장과 고통, 정신과 신체의 의도적 경직, 공격하고 싶은 열망과 그렇게 하면 실패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갈등이 존재한다. 가장 원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억제해야 하는 것이 사냥이다. 브레닌이 느꼈을 고통은 토끼를 향해 은미랗게 접근할 때 부분적으로나마 완화됐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멈추면 똑같은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은 황홀경이라기보다 고통인 것이다.

주사를 놓는 시간 사이사이에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상처 부위를 핥지 못하도록 브레닌의 목에는 깔때기를 씌워 놓았다. 브레닌은 깔때기를 매우 싫어해서 벽, 탁자, 텔리비전 등에 닥치는 대로 깔때기를 부딪치며 싫은 표시를 했따. 물론 치료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브레닌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요일에 수의사에게 갔을 때는 조금만 아팠는데, 이제는 두 시간마다 끔찍한 일을 반복해서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저녁 브레닌과 함께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느꼈던 고립감과 외로움, 그리고 절망감은 말로 하기 어렵다. 진짜 공포는 브레닌을 잃게 된다는 절박함에 있지 않았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브레닌은 두려워했고, 녀석을 안심시키려는 내 노력은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브레닌의 고통은 컸으리라. 여전히 밤낮없이 두 시간마다 상처 부위를 소독하는 것은 견딜 수 없이 아플게 분명햇다. 브레닌은 씻기고 치료할 때마다 낑낑거리기 시작해 결국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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