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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위한 기록

인간 실격(민음사 세계문학전집) - 다자이 오사무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지금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란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 할 뻔할 적도 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자네겠지.'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한 거겠지.'

'너는 너 자신의 끔찍함, 기괴함, 악랄함, 능청맞음, 요괴성을 알아라!'

호리키가 커다랗게 기침 소리를냈습니다. 저는 혼자 도망치듯 다시 옥상으로 뛰어 올라와 드러누워 비를 머금은 여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그때 저를 엄습한 감정은 노여움도 아니고 혐오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엄청난 공포였습니다. 그것은 묘지의 유령 따위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신사의 삼나무 숲에서 흰 옷을 입은 신령과 부딪쳤을 때 느낄지도 모를, 아무 소리도 안 나오게 만드는 고대의 거칠고 난폭한 공포였습니다.

죽고 싶다. 숫제 죽고 싶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무슨 짓을 해도. 무얼 해도 잘못될 뿐이다. 창피에 창피를 더할 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아오바 폭포에 가겠다니, 나로서는 바랄 수도 없는 일이야. 그저 추잡한 죄에 한심한 죄가 겹쳐지고, 고뇌가 증폭하고 격렬해질 뿐이야. 죽고 싶어. 죽지 않으면 안 돼. 살아 잇다는 것 자체가 죄의 씨앗이야, 라는 등 외곬으로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집과 약국 사이를 반미치광이처럼 왕복할 뿐이었습니다

진정한 폐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저는 점점 더 얼간이가 되어갔습니다. 아버님이 이젠 안 계신다. 내 마음에서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던 그 그립고도 무서운 존재가 이젠 안 계신다. 내 마음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떤 그 그립고도 무서운 존재가 이젠 안 계시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공연히 무거웠던 것은 아버지 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모든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고뇌할 능력조차도 상실했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맃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아뢰옵니다. 아뢰옵니다, 나리. 그 사람은 너무해. 못됐어. 네, 불쾌한 놈입니다. 나쁜 사람입니다. 아아, 참을 수 없어. 살려둘 수 없다고. 네, 네.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을 살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이 세상의 적입니다. 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압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갈기갈기 찢겨 발겨서 죽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