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인 개선문입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주인공 리바크는 독일 경찰 게슈타포에 수배중인 동지를 숨겨주었다 체포되고, 심문 과정에서 연인 시빌이 자살합니다. 라비크는 강제수용소를 탈출하여 파리로 망명하고 불법 체류자가 되어 대리 수술을 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던 도중 아름다운 여성 조앙 마두와 사랑에 빠집니다. 전쟁과 사랑, 너무나 재밌는 주제고 이걸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몇 번 읽어도 질리지 않을 소설입니다. 읽으며 괜찮다고 생각한 몇 부분 소개하겠습니다.
1. 그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왜 이 여자를 붙들었던가? 무슨 사연이 있는 여자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사연이 있는 여자들은 많이 보아 왔지 않은가. 특히 밤중에, 파리의 거리에서 말이다
2. 그는 욕실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두어 시간 전에도 그는 지금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그동안 한 인간이 죽은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순간순간 몇천 명씩 죽어 나가지 않는가. 거기에 대한 통계도 있다. 그런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죽은 그 인간에게는 그 순간이 전부이며,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온 세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3. 내가 벌써 취했군 하고 라비크는 생각했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빨리 취하네. 불빛이 침침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두 가지 다 때문일까? 이 여자는 이미 그 보잘것없는 퇴색된 여자가 아니다. 무언가 달라졌따. 갑자기 두 눈이 생겼다. 얼굴이 있다. 무언가가 나를 본다. 아마도 그림자들일 테지. 내 머릿속의 부드러운 불길이 이 여자를 비추고 있다. 취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눈부신 빛이다.
4. 부상자들은 달빛 훤한 테라스에 나란히 줄을 지어 누워 있었다. 독일과 이탈리아 비행기 몇 대가 그런 일을 저질러 놓았던 것이다. 포탄 파편에 찢긴 아이들, 여자들, 농부들. 얼굴이 날아간 아이, 가슴까지 찢어진 임신부, 떨어져 나간 손가락들을 다시 꿰맬 수 있을가 해서 다른 쪽 손으로 걱정스럽게 받쳐 들고 있던 한 늙은 노인. 그 모든 것 위로 짙은 밤의 냄새가 가득했고, 맑은 이슬이 내리고 있었다.
5. "저는 행복해요. 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정말 행복해요. 당신과 함께 눈을 뜨고, 당신과 함께 잠들면 그만이에요. 다른 건 몰라요. 우리 두 사람 일을 생각하면, 내 머리는 은이 되어 버려요. 때로는 바이올린이 되어요. 거리는 우리 두 사람으로 가득 차요. 마치 음악으로 가득한 것처럼.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어 참견도 해요. 영화에서처럼 장면들은 미끄러져 지나가지만, 음악은 남아요. 영원히 남아요."
6. "내 다리를 잘랐어요?" 하고 자노가 물었다. 그의 마른 얼굴은 핏기가 없어 낡은 집 벽처럼 희었다. 주근깨들이 시커멓게 돋아 있어서, 원래부터 얼굴에 있떤 게 아니라 페인트로 칠을 한 것처럼 보였다. 절단된 다리는 철사로 엮은 바구니에 들어 있었고, 그 위를 담요가 덮고 있었다.
"아프니?" 라비크가 물었다.
"네. 다리가, 다리가 몹시 아파요. 간호사한테 물어봤지만, 무뚝뚝하게 말해 주지도 않았어요."
"다리를 잘랐단다." 라비크가 말했다.
"무릎 위요, 아니면 아래요?"
"10센티미터 위야. 무릎은 으스러져서 살릴 수 없었어."
7.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샹젤리에 거리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길모퉁이마다 몇몇 매춘부들이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그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피에르샤롱 거리, 마루뵈프 거리, 마리니앙 거리를 지나, 롱포앙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되돌아서서 개선문으로 나왔다.
8. 여자는 그의 손에서 잔을 가져와 마셨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는 자기가 여자한테 빠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각이나 그림 같은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바람이 그 위를 불어가는 목장과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2권 계속 업로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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