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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위한 기록

한국인 눈으로 본 태평양 전쟁1(미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쟁) - 심은식

한국인 눈으로 본 태평양 전쟁 - 심은식

 

한국 근현대사를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한국은 일본의 야욕에 희생당했습니다. 일본이 동남아, 태평양, 중국으로 전선을 넓히면서 전쟁물자, 병력, 노동인구가 필요했고 그 결과 식민지인 한국의 국민들을 강제징용, 징병 했습니다. 태평양 전쟁은 우리나라 역사와 매우 관련 깊은 전쟁입니다. 그래서 더 알아보고 싶어서 이 책을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읽으며 제가 괜찮다고 생각한 몇 부분 소개하겠습니다.

1. 중, 일 양국군 사이에서 처첫 총성이 울렸다. 이른바 제1차 상해사변이 일어난 것이다.이곳은 엄연히 중국 주권지이며, 이곳을 침범하는 것은 중국 주권의 침해였고, 침입하는 일본군을 맞아 싸우는 것은 중국군의 자위행위였다.

2. 만주사변과 상해사변은 결국 '만주'를 일본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요식행위였다. 하지만 이제 국제사회의 규탄이 잇따르자 일본은 한 발 물러서서 먼저 현지에 괴로국가를 만들기로 하였다.

3. 일본 해군항공대는 15일 아침에 대만을 출발하여 항주의 중국군 비행장에 대규모 포격을 감행했고, 또한 일본 본토의 큐슈에서 출발한 폭격대가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남경을 무차별 폭격했다.

4. 이리하여 일본군은 23일 0시를 기해 육상과 해사에서 인도차이나에 대한 침입을 개시하였다. 먼저 육상진주부대는 구노우 중장 지휘의 제5사단이었다. 이 부대 안에서는 현지 군사협정을 무시하는 자가 있어 곳곳에서 프랑스군과 일본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6. 일본의 국책이 미영과의 전쟁 쪽으로 기울어져가는 동안 일본 규슈의 남단에 있는 가고시마만에서는 매일같이 해군 항공대의 맹연습이 계속되고 있었다. 가고시마만이 훈련장소로 지정된 것은 ㅏㅎ와이의 진주만과 그 지형이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7. 일본 기동부대는 이미 전투배치를 끝내고 후지다 중좌가 인솔하는 제1파 183대는 6척의 항공모함으로부터 날아올라갔다. 공격기 89대 폭격기 51대 전투기 43대의 편성이었다. 그곳에서 진주만까지의 거리는 불과 1시간 50분의 거리였다.

8. 평하스러운 호놀롤루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잇따른 폭음과 함꼐 진주만과 그 부근 진지에서 대공포화가 하늘에 탄막을 쳤다. 그리고 일본의 공격과 미군의 포탄 파편에 의해 시민들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2권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