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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위한 기록

프랑스1940(제2차 세계대전 최초의 대규모 전격전) - 앨런 셰퍼드

 히틀러는 독일 젊은이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었다. 그는 단기전을 신봉했기 때문에 자신의 부대를 단기전에 맞게 개조하기 위해, 젊은 병사들에게 공격적인 돌파 전술을 훈련시키고 완벽한 기동력을 갖춘 부대에 최고의 병사를 배치했다. 그 결과 새로운 종류의 육군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고, 더 나아가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병력과 무기를 검증할 수 있었다.

 

 여명이 밝아오자, 독일 22공수보병사단 소속 병사 4000명을 실은 ju 52 수송기가 접근하면서 프로펠러의 소리가 점점 더 커졌고, 이들은 곧 국경 상공을 통과했다. 독일 공군 폭격기 승무원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출격 15분 전에 브리핑에 들어갔고, 동이 트자 이륙했다. 그들의 목표물은 멀고도 광범위했다. 영국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고 네덜란드와 벨기에, 프랑스의 비행장 과 더 나아가 프랑스 후방 깊은 곳에 잇는 철도와 도로 연결망을 공습했다.

 

 롬멜은 마지노선 돌파를 준비하면서 5월 16일 아침을 보냈다. 그는 프랑스 국경선 뒤에는 요새가 더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을 거싱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롬멜의 상대는 11군단의 잔여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 벙커와 대전차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일부 벙커는 아직도 잠겨 잇었다. 롬멜이 막 작전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 군사령관인 폰 클루게 장군이 사단본부를 방문했다. 그는 자신의 사령부에서 목격한 현황에 몹시 만족해하면서 롬멜의 작전을 전적으로 승인했다.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롬멜은 선두 전차연대의 연대장 전차를 타고 있었다. 그들은 시브리를 출발해서 서서히 클레르파이로 접근했는데, 도로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마을을 우회했다. "갑자기 약 100미터 전방에서 프랑스 요새의 모습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롬멜은 완전무장한 프랑스 병사가 마치 항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뒤에 있던 녹일 전차가 사격을 개시하자 갑자기 벙커로 뛰어들었다고 회고했다.

 

 5월 17일 동이 트자, 드골은 공격을 개시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독일의 정착대 하나를 전멸시켰다. 2대의 장갑차가 파괴되고 또 다른 비장갑차량이 불길에 휩싸였다. 15:00시까지 드골의 전차들은 전투를 치르며 몽코르네로 전진했다.

 

 연합군은 모든 도로에서 피난민 때문에 저지당하고 있었다. 증원부대의 도착이 지연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상자들은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구급차 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한편 됭케르크에서는 철수작전이 시작되었다. 5월 27일에는 불과 7669명의 병력만이 출발할 수 있었지만, 다음 날 영국 해군은 엄청난 수의 소형 선박들을 추가로 동원했다. 그 수는 1만 7804척이나 되었다. 5월 29일, 프랑스 전함들이 도착했고 4만 7310명이 철수했다. 5월 31일에는 최고조에 달해서 6만 8014명이 됭케르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