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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위한 기록

인플레이션 - 하노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반 (경제 책 소개 / 책리뷰)

 

 

1923년은 독일인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해엿다. 정부에서 독일의 통화인 마르크를 붕괴시킨 해였기 때문이다. 1마르크였던 신문 한부의 가격이 8000만 마르크로 치솟았다. 평생 저축한 돈 10만 마르크로 전차 티켓 한 장도 살 수 없었다. 아이들은 지폐로 종이접기 놀이를 했고, 상점에서 물건을 하나 사려면 아내들은 남편들이 벌어온 돈을 바구니 몇 개에 나눠 담아가야 했다. 독일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져 히틀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인플레이션이었다.

 

17세기까지 인플레이션의 주 원인은 화폐 자체였다. 금, ds, 청동, 구리로 된 화폐들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녔다. 사람들은 금속을 채굴하여 동전을 주조했고 이 모든 작업을 하는 pe는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종이로 화폐를 사용하면 금전과 시간에 제약이 없었다. 종이에 일정한 가칠르 명시하고 서명만 하면 되므로 이보다 더 간단할 순 없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재정난,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가의 재정난이다 일단 국가는 증세로 재정 문제를 해결한 뒤 국내외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빌리거나 저축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강한 정부와 국민과 유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 대다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초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과는 다르다. 약한 정부도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 국가가 불안하고 정치인들이 무능하면 전후사정을 살피지 않고 화폐발행량을 늘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혁명이나 전쟁을 겪은 후 경제는 불안정해진다.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에 초인플레이션 현상이 여러 번 있엇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전쟁배상금 지불판결을 받았는데, 이 전쟁배상금이 1920년대 독일에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한마디로 전쟁배상금이 사실상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장본이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의 법칙대로라면 공급된 제품의 가치와 수입이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 이때 생산과 수입은 항상 대응관계에 있으며, 생산된 제품을 살 수 있을 만큼 유지된다. 이 관점에서는 수요가 줄어들고 고용이 감소하여 생기는 불황은 불가능하다. 단기적으로 삐걱거리는 현상이 나타나도 임금과 가격이 탄력적이기 때문에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삐걱거리는 현상이 나타나도 임금과 가격이 탄력적이기 때문에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의 법칙이 지배하는 체계에서는 수요가 사라질 수 없다. 국민의 저축이 증가할수록 소비 수요는 감소한다. 한편 이율이 감소하면 투자가 촉진되기 때문에 결국 투자재에 대한 수요가 다시 증가하는 셈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70년대 경제를 뒤흔든 핵심 축은 원유 가격이었다. 1973년 10월 6일부터 같은 해 10월 25일까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욤키푸르 전쟁이 터지면서 opec 회원국들이 서방 선진국에 석유 수출을 중단한 것이다. 1973년 원유 1배럴당 3달러였던 것이 1979년에는 1배럴당 38달러로 폭등했다. 이때 생긴 신조어가 공급파동이다

 

당신이 주식 투자의 리스크를 줄이고 싶다면 장기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투자기간을 길게 10년으로 잡으면 리스크는 80퍼센트 감소하고, 20년으로 잡으면 연 수익의 변동폭이 약 90퍼센트 감소한다. 투자기간이 길수록 리스크가 작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