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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위한 기록

파리대왕 - 윌리엄 골딩(민음사세계문학전집 / 해외소설 / 책추천 / 노벨상 수상작)

 

 

 금발의 소년은 몸을 굽히듯이 해서 이제 마지막 바위를 내려와 초호 쪽으로 길을 잡아 조심스레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복이었떤 스웨터는 벗어 한 손으로 질질 끌고 있었꼬 회색 셔츠는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풀칠이라도 한 듯 이마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정글을 후려친 소년 둘레의 흉터 자국은 온통 열탕처럼 무더웠다. 소년이 덤불과 부러진 나무줄기 속을 힘에 겨운 듯 육중하게 기고 있을 때 붉고 노란 환영인 듯한 새 한 마리가 홱 날면서 마귀할멈 같은 외마디 울음소리를 내었다. 이어 다른 고함소리가 이것을 받았다.

 

"자, 다들 들어. 이것저것 생각해 내자면 시간이 좀 있어야겠어. 곧장 무얼 해야 할지 당장 정할 수는 없어. 만약 여기가 섬이 아니라면 우리는 곧 구조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우선 여기가 섬인지 아닌지를 알아내야겠어. 각자 여기 남아서 기다려야 해. 다른 데로 가버려선 안돼. 셋이서 많이 가면 혼란이 생겨 서로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탐험을 해서 알아낼테야. 내가 가고, 잭과 그리고..."

 

 울창한 수풀의 초입에 당도해서 지친 다리로 타박타박 헤쳐가고 있을 대 때 그들은 소음 ㅡ 짐승이 끽긱거리는 소리 ㅡ 을 들엇다. 이어 땅바닥을 치는 거친 발굽 소리가 났다. 소년들이 돌진해가니 그 비명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마침내 광기마저 띠어갔다. 그물처럼 얽힌 덩굴에 멧돼지 새끼가 걸려 있고 겁에 질린 멧돼지는 탄력성이 있는 덩굴을 향해 미친 듯이 제 몸을 내던지는 것이었다. 그 비명은 가늘고 날카롭고 집요하였다. 세 소년은 더 돌진해 갔다. 잭은 멋있게 창칼을 빼들었다. 그는 칼을 든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나 순간 그손을 그대로 정지하고 말았다.

 

그들은 거의 진종일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과일을 따가지고는 먹기만 하였다. 잘 익었나 덜 익었나, 맛이 있나 없나 하는 것은 가리지 않았다. 이제는 배앓이나 일종의 만성 설사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어두워지면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였고 서로 의자하려고 떼지어 있었다. 먹는 것과 잠자는 것 외에는 노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목적도 없이 하찮은 놀이를 눈부신 바닷가의 흰 모래에서 벌이는 것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이 소라를 들고 그 녀석한테 갈 테야. 이것을 내밀 테야. 자 보아 하고 난 말할 테야. 너는 나보다 기운도 세고 나처럼 천식도 앓고 있지도 않아. 너는 두 눈이 멀쩡해서 모든 것이 잘 보여. 선심을 써서 안경을 돌려 달라는 게아냐. 사나이답게 굴라고 하는 것은 네가 기운이 더 세기 때문이 아니야. 옳은 것은 옳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안경을 돌려줘. 내게 돌려줘야 해 ㅡ 난 이렇게 말해 줄 테야"

 

 살의를 품고 그는 랠프에게 창을 던졌다. 창 끝이 랠플의 갈비뼈 위의 살갗과 살을 째고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랠프는 비틀거렸다. 아픔보다도 공포에 질렸다. 오랑캐들은 이제 대장처럼 함성을 지르며 전진하였다. 구부러져서 똑바로 날질 못하는 창하나가 랠프의 얼굴을 스치듯이 지나가고 로저가 있는 꼭대기에서도 하나가 날아왔다. 쌍둥이 형제는 오랑캐패 후방에서 숨어 있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악마의 얼굴들이 좁은 길목을 질러서 떼지어 갔다.

 

 소년들의 울음소리에 둘러싸인 장교는 감동되어 약간 난처해했다. 그는 그들이 기운을 회복할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 외면을 하였다. 멀리 보이는 산뜻한 한 척의 순양함에 눈길을 보내며 그는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