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언가 스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감고 있었던 탓인지 방 안의 흰빛이 눈부셔 보였다. 내 앞에는 그림자 하나 없었고, 물체 하나하나, 모서리 하나하나, 모든 곡선들이 눈이 아플 정도로 뚜렷이 드러나 보였다.
2. 소금물에 젖은 몸은 미끈미끈해 보였으며, 머리는 뒤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마리와 나는 옆구리 꼭 붙인 채 누웠는데, 그녀의 체온과 뜨거운 햇볕, 그 두 가지 열기 때문에 나는 조금 잠이 들었다.
3. 시뻘건 폭발은 그대로였다. 모래 위로, 바다는 아주 빠르게 부딪치며 헐떡였고 잔파도들이 숨 가쁘게 밀려왔다. 나는 천천히 바위를 향해 걸었는데 햇볕에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열기 전체가 나를 짓누르며 내 걸음을 막아서는 것 같았다. 얼굴을 때리는 뜨거운 숨결을 느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주머니 속의 주먹을 움켜쥐며, 태양과 태양이 쏟아붓는 그 영문 모를 취기를 이겨 내느라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흰 조개껍데기나 깨진 유리 조각, 모래에서 발하는 모든 빛의 칼날로 내 뺨은 긴장했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4.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두 주먹을 부르쥐었고, 태양과 태양이 쏟아부어 주는 그 영문 모를 취기를 견뎌 이기려고 전력을 다해 몸을 버티는 것이었다. 모래나 흰 조개껍질이나 유리 조각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칼날처럼 번뜩일 때마다 양쪽 턱뼈가 움찔하곤 했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5. 레몽이 권총을 나에게 주었을 때, 그 위로 햇빛이 번쩍 반사되며 미끄러졌다. 그러나 우리들은 마치 모든 것이 우리들의 주위를 둘러막아 가두고 있듯이,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6. 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7. 그때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8. 그와 동시에 나는 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은 옷 위로 그녀의 어깨를 꼭 껴안고 싶었다. 나는 그 얇은 천에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 천 말고 또 무엇에 희망을 품어야 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리가 하고자 한 말도 아마 그런 뜻이었으리라. 마리는 줄곧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녀의 반짝이는 치아와 눈가의 잔주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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