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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위한 기록

에세이 세계사3 중세 - 백산서당편집부

에세이 세계사 중 중세편입니다. 읽으며 괜찮다고 생각한 몇 부분 소개하겠습니다.

1. 옜날 중국으로부터 서쪽으로 중아앙시아의 오아시스 국가들과 페르시아를 지나 시리아에 이르는 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지중해를 지나 시리아에서 로마까지 이어져 있었다. 중국과 로마를 연결하는 이 길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은 19세기에 '비단길'이라고 이름붙였다.

2. 인도의 향료와 중국의 비단, 이 두 가지 품목을 찾는 로마인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었고 이것을 안 사산조 페르시아는 향료와 비단을 독점해서 가격을 점점 올렸기 때문에 로마는 막대한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3. 티무르의 꿈은 칭기스칸이 세운 대제국을 자기 손으로 재현하는 것이었다.

4. 수공업자들은 도로 주변에 3층 정도의 집을 세웠다. 이 집의 1층은 일터였는데 바느질집은 바지나 윗옷을, 구둣방은 갖가지 구두로 만들었다. 이 집에는 도제라고 불리는 소년이 있었다. 한 사람의 직인이 되기 위해 집안의 자질구레한 용무를 거들면서 조금씩 일을 익혀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다. 직인이 되려면 반드시 도제가 되어 몇 년 간 수업을 쌓지 않으면 안 되었따.

5. 피렌체 상인들은 모직묵의 원료인 양모와 염료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제품으로 만들어진 모직품을 팔기 위해 이탈리아반도는 물론 지중해 연안국 그리고 현재의 터키와 중앙아시아까지 활동의 장을 넓혀갔다.

6. 중국 명나라의 황제 영락제는 요즘 매우 기분이 좋다. 수도 북경의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기뻐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왠고하니 바다 저편에서 온 사신의 선물 속에 한 마리의 진귀한 동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기린. 인도의 벵갈국이 아프리카로부터 손에 넣은 기린을 명나라 황제에게 공물로 바친 것이다.

7. 포르투갈 탐험대가 서아프리카 해안과 부근 섬에 상륙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평화로이 살고 있던 그곳 주민에 대한 '노예사냥'이었다. 또한 이때부터 사하라사막을 지나 말리왕국의 통북투 부근까지 진출, 북아프리카의 토산품과 기니의 금을 거래하고 있떤 베르베르인이 포르투갈인에게 노예, 사금 상아를 모아 팔아넘기는 일에 나서기 시작했다.

8. 후추, 계피, 전향유 등은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 지금이나 옜날이나 흔히 식사의 조미료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는 저장한 고기나 생선의 부패를 막고 냄새를 없애 맛을 좋게 하는 귀중한 물건이었다. 또한 그 향기는 페스트나 콜레라 등 나쁜 유행병을 방지한다고 믿었기에 약품으로서도 존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