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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위한 기록

수사학(말하기의 규칙과 체계) - 키케로

 

 정치가, 변호사, 철학자, 인문학자였던 키케로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그는 대표적인 공무원 철학자라 할 수 있다. 그의 인생은 두단어로 요약 정리된다. 즉 의무와 여가이다. 의무라는 단어에서 키케로는 정치 활동의 동기와 정당성을 찾았고, 여가에서 저술 활동과 철학적 사고를 전개했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기원전 81년에 푸블리우스 큉크티우스의 변호를 시작으로 법정 무대에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기원전 80년에 젊은 변호사 키케로는 로스키우스를 변호하게 되는데, 이 사건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당시 딕타토르였던 술라의 미움을 사게 된다. 이러산 사정으로 말미암아 키케로는 그리스로 거의 정치적 망명에 가까운 유학 길을 떠나게 된다

 

 칭기즈 칸은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을 세웠음에도 몽고어로 된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원전 한 권을 남기지 못했다. 키케로는 천하의 칭기즈 칸도 중원의 만주족도 그 위세와 힘을 가지고도 못 했던 일을 단지 혀 하나와 두 손으로 해냈다. 시간의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말을 많이 했던 사람이 키케로였을 것이다. 말하는 시간이 침묵하는 시간보다도 더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케로의 말 안에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힘이 세상에 영향을 주었고 사람들을 움직였으며 역사의 기억에 흔들리지 않는 닻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기원전 63년 콘술 역임 이후 키케로의 인생은 추방과 굴욕의 역사였다. 기원전 60년은 제1차 삼두정치에 대한 협약이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그리고 크라수스 사이에 맺어지고, 기원전 59년에 카이사르가 콘술이 된다.그야말로 키케로의 혀가 힘을 쓰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으로 역사는 흘러간다. 급기야 기원전 58년에는 클로디우스가 카탈리나 내란 음모 사건을 처리할 때 범한 몇몇 위법 사실을 물어 키케로를 고발하게 되는데, 키케로는 소송에서 패배했고 곧장 추방 명령을 받는다.

 

 연설가는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신뢰를 줄 수 있는지의 방법과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의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사실 기술이란 사건의 해명이고 논증 구성을 위한 기초 토대이고 이를테면 어떤 자리이다. 사실 기술에서는 특히 연설의 나머지 부분에서 대부분 재언급되는 사항을 말해야 한다. 이 중 일부는 필수적인 것이고, 일부는 장식을 위해서 덧붙여진 것이다. 명확하고 납득이 가도록 사실 기술을 해야 함은 필수적이나 즐거움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연적인 것은 일변 개별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무게를 통해서 신뢰도를 높이기도 하나, 일면 비록 자기 스스로는 미세하지만, 모아놓으면 큰 힘을 발휘한다. 개연적인 것에는 사나을 식별해주는 고유 표지도 종종 포함된다. 그런데 개연성을 확보하고 있는 선례가 무엇보다도 큰 신뢰를 만든다.

 

 강조는 선명하게 보여주는 힘을 지닌 단어 사용이 해당하나, 일상 어법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고, 무게가 있어야 하고, 음성이 가득차야 하고, 소리들이 공명을 이루어야 하고, 복합어, 신조어, 유의어, 비속하지 않은 단어 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유를 사용해야 한다. 동어반복과 어두 동어반복과 이중 연속 반복도 강조에 한 역할을 담당한다. 낮은 단계에서 더 높은 단계로의 점차적 상승도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