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장을 위한 기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는 듯 그녀 쪽으로 몸을 날렸다. 발레리안 약병이 바닥에 떨어졌고 양탄자 위에 커다란 얼룩을 남겼다.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그의 품 안에서 빠져나가려고 했고, 그는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십오 분 동안 미친 사람을 조여 매는 구속복처럼 그녀를 껴안았다.

 

 한때 인간은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규칙적인 박동 소리를 듣고 놀라 기겁을 하며 이것이 무엇일까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육체처럼 낯설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물이 자신과 일체를 이룬다고 인간은 생각할 수 없었다. 육체는 껍데기고 그 안에서 뭔가가 보고, 듣고, 두려워하고, 생각하고 놀라는 것이다. 이 무엇, 남아 있는 잔금, 육체로부터 추론 된 것, 이것이 영혼이다.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이 ㄹ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 애쓴다.

 

 내 생각에 사바나 역시, 이상하리만큼 고부녹분하고 수줍은, 그녀 애인의 부인 앞에 마주 선 이런 상황에 도발적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그녀는 두세 차례 셔터를 눌렀고 이러한 도취 상태에 스스로 놀라 이를 빨리 해소하기 위해 큰 소리로 웃었다. 테레자도 따라 웃었고 두 사람 모두 옷을 다시 입었다.

 

 이 말에 위경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절망적이었다. 얼마나 몸을 잘 닦았는데! 그는 낯선 여자의 어떤 체취도 남기지 않으려고 손과 얼굴 그리고 온몸을 세심하게 문질러 댔더랬다. 다른 여자의 욕실에서도 향기 나는 비누는 피했다. 그는 항상 자기 비누를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잊었다. 그렇다. 머리카락 그것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테레자는 행복했고 이제 목적을 달성했다고 믿었다. 토마시와 그녀, 이들은 함께 있으며 홀로 있게 되었다. 홀로라고? 보다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내가 고독이라 일컫는 것이란 그들이 예전 친구나 지인들과의 모든 접촉을 단절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가위로 리본을 자르듯 과거 삶으로부터 현재 삶을 단절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행복했다. 

 

 그것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테레자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 한 쌍을 괴롭히는 질무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할까?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이런 모든 의문은 사랑을 그 싹부터 파괴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