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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및 전쟁사

중일전쟁1 / 제2차 상해사변(상하이전투) / 역사 / 전쟁사 / 장제스 / 일본 제국주의

 장제스는 결국 중국 북부에서의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되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완전히 버렸다. 그의 최정예 부대는 난징 정부가 관리하는 중부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곳은 일본과의 결전을 시작하기 위해 장제스가 직접 선택한 장소였다. 그곳은 바로 그 유명한 최대 항구 도시 상해였다.

 

중일전쟁의 시작

 지난 몇 주 동안 중국과 일본은 상하이 근처에서 싸울 준비를 했다. 일본은 상하이의 병력 보충을 위하여 해군 부대를 움직였고 8000여 명 이상을 모았다.

 

장제스

1937년 장제스는 자신의 군대에게 상하이를 절대 사수하라는 명려을 내렸다. "적들을 바다로 몰아내고, 해안선을 봉쇄하며 상륙을 저지하라."

 

 국민정부군 지휘부는 상하이에서 일본 해군을 격파하기 위해 상하이 중심의 황푸강에 정박 중이던 이즈모를 폭격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공군 폭격기들은 창장강 하류 비행장에서 상하이를 향해 출격했다. 목표물은 일본 군함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폭격기에서 어뢰 4발을 낙하했는데 폭탄은 도심지의 사람이 밀집되어 있는 장소에 떨어졌다. 그래도 이즈모의 피해를 입히긴 했다.

 

 일본 해군 항공대는 15일 아침 대만을 출발하여 항주의 중국군 비행장에 대규모 폭격을 시작했고, 일본 본토 규슈에서 출발한 폭격기 편대가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남경을 무차별 폭격했다. 일본군의 남경 폭격은 상해사변 기간 내내 진행됐고, 그 피해자는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입었다.

 

상하이를 폭격하러 가는 일본 폭격기

 중국군 폭격기 조종사들의 한심한 실력과 별개로 장제스의 육군은 상하이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저항을 분쇄하기 위한 일본군의 엄청난 폭격과 함께 상하이 시내에서는 치열한 시가전이 치러졌다. 

 

시가전

 중국군은 항일자위선언을 선포했고 전국 총동원령을 발표했다. 그리고 대일 항전태세를 갖추었다. 일본 육군 참모부는 2개 사단병 병력을 상해에 파견했다. 그렇지만 중국군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혀 일본군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일본군은 다시 대만에 있던 일본 군대를 추가로 파병했다. 그럼에도 전쟁의 교착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행군하는 일본군

 이런 교착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육군참모본부는 화북지방 작전을 실시 중지하고 상하이를 점령하기 위해 가용 병력을 총동원하기로 계획했다. 그리하여 신편제 제10군을 편성하여 상하이에 추가 파병하였다. 이 병사들은 항주만에 침입하여 상륙을 감행했다.

 

 일본군이 항주만에 상륙한 것은 중국군의 배후를 쳐서 곧장 남경을 쳐들어 가기 위해서였다. 중국군은 나름 최선을 다해 방어전을 벌였으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해를 향한 일본군의 압박에 일본군 제9사단을 최대한 방어하고 있던 중국군은 약해지고 있었다.

 

시가전

 상하이 전투의 마지막은 10월 24일 중국군이 쑤저우허로 물러가며 시작됐다. 일본군은 끝내기 위해 12만 명의 병력을 보내 2주 동안 중국군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상하이 서남쪽에 일본군 부대가 추가로 상륙하여 중국군을 압박했다. 

 

아수라장이 된 상하이

 장제스는 불가피한 상황을 맞았다. 그의 군대는 더이상 상하이를 막아낼 수 없었다. 장제스는 자신의 부대를 다치게 하는 것보단 철수를 결정했다. 그리고 소모전을 통해 적을 지치게 하고 속전속결 계획을 막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장제스는 지휘관들에게 상하이를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일본군은 대방진 점령하고, 소주하의 선까지 도달하고 결국 상해 주변 전역을 완전히 점령했다. 그렇지만 일본군이 아무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군은 9000명이 죽고 3만 명 이상이 다쳤다.  상하이 전쟁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상하이 전쟁은 국가 전체의 싸움이 됐다. 만주사변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였다. 

 

상해를 점령한 일본군의 다음 목표는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남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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