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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위한 기록

목민심서 - 다산 정약용

 

 오늘날 무인이 제 발로 이조 관원을 찾아가 수령 자리를 구걸하는 것이 관례가 되고 풍속을 이루어, 이제는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수령 자리를 구걸하는 자도 자신의 재주와 슬기가 능한가 능하지 못한가를 스스로 헤아리지 않고, 그것을 들어주는 자도 역시 알아보거나 묻지 않으니, 정말 잘못된 일이다. 

 

 관청의 일은 기약이 있는 법인데, 그 기약이 믿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명령을 두렵게 여기지 않을 것이니, 기약은 미덥게 해야 한다. 뭇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는 반드시 약속을 분명히하고 이를 거듭거듭 알리고, 또 기한을 여유있게 주어 주선할 수 있게 한 뒤에 이를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약속대로 시행해도 탓하지 못할 것이다

 

 백성의 윗사람 된 자는 움직이고 정지하며, 말하고 침묵하는 것을 아랫사람이 모두 살피어 의심쩍게 탐색하는 법이니, 방에서 문으로, 문에서 고을로, 고을로부터는 사방으로 새어나가서 한 도에 다 퍼지게 된다. 군자는 집안에서도 말을 삼가야 하거늘, 하물며 벼슬살이 할 때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비록 시중드는 아이가 어리고 시중드는 종이 어리석다 하여도, 여러 해를 관청에 있으면 백번 단련된 쇠와 같아서 모두가 기민하고 영리하여 엿보아 살피는 것이 귀신과 같다 백성의 윗사람 된 자는 조심해야 한다.

 

 아랫사람을 너그러이 대하면 순종치 않는 백성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윗사람이 되어 너그럽지 아니하고 예를 처리는 데 공경하지 아니하면, 볼 것이 무엇 있겠는가 하였고 또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벼슬살이에는 위세와 사나움을 앞세우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흔히 말하는데 이는 속된 말이다. 먼저 사나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스스로도 좋지 않을 것이다. 죄가 있으면 죄를 주는 것이니, 내가 형벌을 쓰는 것은 각기 그 죄에 합당한 것뿐인데 어찌 위세와 사나움을 앞세울 것인가?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 아전들은 늘 이 일은 비밀이라 사람들이 아무도 모릅니다 퍼뜨리면 제게 해로울 뿐이오니 누가 감히 퍼뜨리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령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뇌물을 흔연히 받지만, 아전은 문을 나서자마자 마구 떠벌려 자신의 경쟁자를 억누르고자 하니, 그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지건만 수령은 깊이 들어앉아 고립되어 있어서 전혀 듣지 못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청탁이 행해지지 않고 뇌물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이것이 집을 바로잡은 것읻. 나의 지위가 높아지면 아내와 자식부터 나를 소익고 저버리게 된다. 남편을 공경하지 않는 아내가 없으며,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아들이 없는데, 어찌 속이고 저버릴 마음이 있겠는가? 그러나 도리르 ㄹ아는 사람이 적어서 혹은 안면에 끌리기도 하고, 혹은 재물에 유혹되기도 하므로, 청탁이 행해지는 것이다.

 

 아첨을 잘하는 자는 충성스럽지 못하고, 간쟁하기 좋아하는 자는 배반하지 않는다. 이 점을 잘 살피면 실수하는 일이 적다. 지위는 비록 낮지만 현령에게도 다스리는 자로서의 도리가 있다. 힘써 아첨을 물리치고 간쟁을 흡족히 받아들이기를 노력해야 한다.

 

 환곡은 사창이 변한 것으로 춘공기에 곡식을 빌려줬다가 추수기에 거둬들이는 조적도 아니면서 백성의 뼈를 깎는 병폐가 되었으니 백성이 죽고 나라가 망하는 일이 바로 눈앞에 닥쳤다. 감사가 환곡을 이용하여 장사를 하면서 장삿길을 크게 터놓았으니, 수령이 법을 어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수령이 농간질하여 남긴 이익을 훔치니 아전의 농간질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