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무튼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데서 야오야옹 울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족속을 봤다. 나중에 들은즉 그건 서생이라는, 인간 가운데서도 가장 영악한 족속이라 한다. 이 서생이라는 족속은 가끔 우리 고양이족을 잡아 삶아 먹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나는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는데, 그럴수록 그들이 제멋대로 군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내가 가끔 통침하는 어린애들의 경우는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자기들 멋대로 거꾸로 지켜 들기도 하고, 머리에 자루를 씌우기도 하고,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궁이 속에 밀어 넣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조금이나마 손을 대기라도 하는 날엔, 모든 식구들이 쫓아다니며 박해를 해댄다.
이웃집 얼룩고양이는 인간들이 소유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크게 분개했다. 원래 우리 고양이 사이에는 말린 정어리 대가리나 숭어 배꼽이라도 그걸 먼저 발견한 자에게 먹을 권리가 없다. 만약 상대가 이 규약을 지키지 않으면 완력에 호소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런 개념이 털끝만치도 없어, 우리가 발견한맛난 먹이를 꼭 자기들을 위해 약탈해간다.
인간에게 조금씩 동정을 받게 되자 자신이 고양이라는 사실을 점차 망각하게 된다. 고양이보다는 어느새 인간 쪽에 다가간 기분이 들면서 이제 고양이라는 동족을 규합하여 두 발로 다니는 선생들과 자웅을 겨뤄보겠따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뿐 아니라 때로는 나도 인간 세계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 때조차 있을 만큼 진화한 것은 믿음직스럽기까지 한다. 감히 동족을 경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정이 비슷한 것에서 일신의 편안함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바 이를 변심이라느니 경박하다느니 배신이라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나는 고양이지만, 에픽테스토를 읽다가 책상 위에 내팽개칠 정도의 학자 집에서 기거하는 고양이인지라 세상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고양이와는 차원이 좀 다르다.
나는 머리로 활동해야 할 천명을 받아 이 속세에 출현했을 정도로 고금에 존재한 적이 없는 고양이인지라 매우 소중한 몸이다. '귀한 자식은 신중하여 아무 데나 안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자신이 다른 존재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여 쓸데없이 내 몸에 위험을 초래하는 일은 자신에게 재앙일 뿐만 아니라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은 참으로 분에 넘치는 자들이다. 날것으로 먹어야 할 것을 굳이 삶고 굽고 식초에 절이고 된장을 바르는 등 기꺼이 쓸데없는 수고를 하며 서로들 무척 기뻐한다. 옷만 해도 그렇다. 고양이처럼 일 년 내내 같은 옷을 입으라는 것은 불완전하게 태어난 그들에게는 좀 무리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잡다한 것을 피부 위에 걸치고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는 세상 견문이 협소하여 바둑이라는 것을 근래에 처음 보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묘하게도 생겨먹었다. 넓지도 않은 네모난 판을 옹색하게 다시 네모난 칸으로 나눠 현기증이 날 정도로 엇선하게 흰 돌과 검은 돌을 늘어놓는다. 그러고는 이겼다느니 졌다느니 죽었다느니 살았다느니 짐딴을 흘리며 수선을 피운다 고작해야 사방 30센티미터 정도의 면적이다. 고양이의 앞발로 한 번 휘젓기만 해도 엉망진창이 될 정도다.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물 위에 떠 있었다. 괴로워서 발톱으로 닥치는 대로 긁었으나 긁을 수 있는 것은 물뿐이어서 긁으면 바로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뒷발로 뛰어오르며 앞발로 긁었더니 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고 발에 뭔가 닿는 느낌이었다. 간신히 머리만 내밀고 어딘가 둘러봤더니 나는 커다란 독에 빠진 것이었다.
'이제 그만두자. 될 대로 되라지. 드드득 긁어대는 건 이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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